조선칼럼
'AI 특이점'의 서막… 이제 대학의 항로를 바꿔야 산다
장대익 학장
May 16, 2025
대전환을 위한 5 제안이 있다
①개인 성공 넘어 지구 생각해야
②백세 시대, '40+ 세대' 교육 허브
③AI를 도구로 개인별 맞춤화
④텃세 없는 AI와 학제 간 협업
⑤능동학습 끝판왕인 '창업' 도약
방향타 쥐고 있는 대선 후보들
눈앞 계기판 말고 수평선을 보라
기술의 진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일과 삶, 그리고 존재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그중에서도 AI의 발전은 단순한 효율성 향상을 넘어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여겨졌던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에 대규모 인력 감축을 본격적으로 단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말 그대로 AI 때문이다.
기술 사상가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해 인류 문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을 ‘특이점’이라고 부르고 그 시점을 2045년(불과 20년 후)이라고 내다봤다. 20년 전에 처음 제시된 이 예측은 한 기술 낙관론자의 철학적 선언일 뿐이라며 비웃음을 샀지만, 지금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구체적 근미래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특이점의 서막. 이 서막에서 가장 먼저 진화해야 할 공간은 바로 대학이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기관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지를 탐색하는 실험장이기 때문이다. 특이점의 서막에서 대학이 준비해야 할 몇 가지 전환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첫 번째는 지속 가능성 전환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이제 개인의 성공을 돕는 데에만 머물 수 없다. 기후 위기, 양극화, 기술 실업, 전쟁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 앞에서 대학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비전을 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교육과 연구의 ‘이유’에 관한 전환이다. 지구가 백척간두인데 대학이 흥할 수는 없다. 가령, 스웨덴 룬드대학은 모든 전공에 기후 위기 대응 과목을 필수화했다. 전공이 경영학이든 문학이든, 지구를 생각하지 않는 지식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라는 철학이 반영된 결정이다.
두 번째는 생애사적 전환이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교육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평생 세 번 이상 직업을 바꾸고 수십 개의 직무를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대학은 20대만의 공간이 아닌, 40+ 세대를 위한 학습의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 특히 이 전환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 대학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적응적 전환이다. 모든 학생이 같은 속도로 같은 방식으로 배운다는 가정은 AI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재 AI 수준으로도 학생의 성향, 이해도, 심지어 감정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학습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이미 AI 기반의 적응형 학습 플랫폼 ‘Knewton’을 도입해 수학과 과학 수업을 개인별로 맞춤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도 탈락률이 크게 줄고 학업 성취도는 유의미하게 향상되었다. 교수는 단지 콘텐츠 제공자가 아니라 학생들의 적응적 학습을 위한 AI 조력자로서 진화하고 있다.
네 번째는 초지능적 전환이다. 작년 노벨상의 최대 뉴스는 AI와의 협업을 통한 연구 수월성이었는데, 최근 도입된 오픈AI와 구글 제미나이의 ‘심층 리서치’ 기능만으로도 인간 연구자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될 가능성이 생겼다. 이 기능은 인간 연구자의 탐색 패턴을 학습하여 논문 주제에 맞는 관련 이론, 실험 설계, 통계 분석, 참고 문헌까지 자동으로 추천해준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AI를 유능한 연구 동료처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여전히 과거의 유물들을 금과옥조처럼 받들고 있다. 높은 학과 장벽은 여전하며 문제 중심형 협업은 요원하다.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한 협업 제안을 AI는 거절하지 않지만 인간 연구자는 환영하지 않는다. 텃세 행동으로는 특이점의 서막을 건널 수 없다.
마지막은 기업가적 전환이다. AI가 지식을 빠르게 전파하고 자동화할수록, 인간이 가진 진정한 경쟁력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세상에 실현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제 지식과 도구를 얼마든지 창조하고 활용하는 시대로 진입했으니,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치와 욕망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제 능동 학습의 끝판왕인 창업을 ‘교육의 종착지’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교육의 최종 목적이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다면,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대학의 새로운 핵심 이념이어야 한다.
대학이 지금 어떤 항로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십 년 뒤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형도는 전혀 다른 풍경을 띨 것이다. 문제는 방향타를 쥐고 있는 대학 당국자, 교육부 관료, 대선 후보들이 수평선이 아니라 계기판만 들여다본다는 데 있다. 서울대 10개를 만들겠다는 약속, AI 인재 20만 양성, 교사 소송 국가 책임제 등의 제안은 절박한 현실에 대한 응답이긴 하지만, 대학이라는 항공모함의 항로를 바꾸려는 용기까지 담겨 있지는 않다. 대학은 기술의 파도를 읽고 항해법을 다시 쓰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