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칼럼
광장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장대익 학장
2025年2月24日
동물 세계 존재하는 超정상 자극
틴베르헌이 발견, 노벨상 받아
인스타 美人·사교육·주식 차트 등
인간도 과잉 자극·과잉 반응 많아
더 큰 우려는 종교와 정치
자칫하면 중심 잃고 교란·표류
정치 과잉 종교 과잉 벗어나
일상의 다양한 신호 집중해야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날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뉴시스
어미 갈매기의 부리 끝에는 붉은 점이 새겨져 있다. 배고픈 새끼 갈매기는 그 붉은 점을 막 쪼아댄다. 그러면 어미는 마치 자동판매기처럼 자신이 물고 온 먹이를 토해내어 새끼를 먹인다. 1950~60년대에 동물학자 니코 틴베르헌은 이런 행동에 대해 짓궂은 의문을 품었다. 만일 훨씬 선명한 붉은 점이 새겨진 더 긴 부리를 인조 모형으로 만들어 제시하면 새끼는 어떤 행동을 할까? 그러자 새끼는 실제 어미는 본 체도 안 하고 인조 부리의 붉은 점만을 필사적으로 쪼아댔다.
당하기는 어미도 마찬가지. 어미 갈매기는 본래 둥지 속 알을 열심히 돌본다. 그런데 초대형 가짜 알을 만들어 둥지에 들이밀면 어미는 진짜 알은 외면한 채 가짜 알에만 정성을 다한다. 이런 행동은 특정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유발되는 선천적 반응(‘고정 행동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자극보다 과장된 자극이 주어지면 더 강하게 반응한다. 틴베르헌은 동물 세계에 존재하는 이런 ‘초정상(超正常) 자극’ 현상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1973년)을 받았다.
인간도 다양한 초정상 자극들에 과잉 반응한다. 포르노는 특히 남성에게 훨씬 강렬한 시각·청각 자극을 주어 때로 중독을 일으킨다. 성형 중독이나 외모지상주의도 마찬가지다. TV와 SNS를 켜는 순간 우리는 최고로 매력적인 외모를 인위적으로 추구하는 수많은 초정상 자극들에 정신을 빼앗긴다. 여전히 수렵·채집 시기에 잘 적응해 있는 우리의 뇌는, 모든 부족을 다 뒤져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거 같은 극강의 매력적 외모를 매시간 처리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우리 수렵·채집인은 인스타그램에서 매번 길을 잃는다.
이른바 ‘7세 고시’ 열풍도 초정상 자극에 대한 고정 행동 패턴 중 하나다. 최근 모 방송사에서 방영하여 크게 언급되고 있는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는 유명 선행 학원 입학을 위해 발버둥치는 만 5~6세 아이와 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아이들이 풀어야 할 문제의 난이도는 수능 수준인데 난이도는 매년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혀를 찰 일이지만 그들은 절박해 보인다. “어머니, 아이가 7세면 늦어요. 4세부터 시작해야 해요”라는 초정상 자극에 홀리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자녀의 미래를 과도하게 걱정하는 부모의 불안 본능이 강하게 작동하는 현장이다.
물론 수렵·채집 시기에 잘 적응된 자녀들의 뇌도 수능 문제를 4~7세에 풀게끔 진화하지는 않았다. 그 시기는 뇌가 잔가지들을 정리하고 큰 도로를 만들어 정상적 신경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게끔 오히려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불안 마케팅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사교육 시장의 초정상 자극에 홀려, 마치 자신의 알은 내팽개치고 커다란 가짜 알을 품는 불쌍한 갈매기처럼, 어린 자녀들을 지적으로 학대하고 있다.
종교도 초정상 자극을 발신하기 쉬운 단체다. 종교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담보로 세상에 대한 과도한 단순화를 조장하고 시대착오적 발상을 강요하며 사실 관계에 대한 감수성을 포기한다면 본질을 잃은 이익집단으로 타락하기 쉽다.
물론 선전·선동이 난무하는 정치 영역에서 초정상 자극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요즘처럼 정치와 종교의 과잉 신호들이 동맹을 맺고 각자의 동맹 규모와 빈도로 우리 뇌를 교란한다면 정상적 자극으로 살아가는 차분한 일상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런 숫자들은 과잉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주말 광장에 몇 만 명이 모였는가, 얼마나 큰 소리로 외쳤는가, 그리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얼마나 큰가를 강조하다 보면,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제 섹스는 포르노처럼 뜨겁지 않다. 정상적 교육에서는 7세가 수능 문제를 풀 수 없다. 돈과 투자 수익만을 최고 가치로 삼는 이들은 주식 차트의 초정상 자극에 삶을 맡긴다. 참된 종교는 광장의 소음이 아닌 세상의 소금으로 인류에 봉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헌재 판사를 협박하거나 당대표에 대한 비판 자체를 금기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는 초정상 자극에 대한 본능적 과잉 행동 패턴 중 하나다. 과잉 자극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삶은 필경 표류한다. 우리 수렵·채집인의 불행은 매주 광장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초정상 자극의 시대를 돌파할 힘은 오히려 일상의 ‘다양하고 미묘한 신호’에 집중함으로써 생긴다. 정치가 아무리 긴박해도 모든 대화를 정치화하진 말기. 종교가 근본적이라도 합리적 비판은 허용하기. 입시나 경제적 독립이 절박해도 다른 가치들을 구석에 몰아넣지는 말기. 새끼 갈매기가 가짜 인조 부리에 속지 않으려면 진짜 어미 고유의 미묘한 신호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처럼.